남영동1985

1985년 9월 4일, 남영동 대공분실로 강제 연행된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는 그날부터 폭행과 고문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거짓 진술을 강요받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던 김종태에게 '장의사'라 불리는 고문 전문가 이두한이 나타나고, 그때부터 그는 상상을 초월한, 과학적이고 더욱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세트로 재연된 고문실. 영화의 대부분은 여기서 진행됩니다.
이것이 칠성판. 실제 경험하신 분들은 학을 떼죠.
원래는 좋은 의도의 물건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씁니다. ㄷㄷㄷ
 
[부러진 화살]로 다시 영화판에 돌아온 정지영 감독은 이전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신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번의 이야기는 故 김근태 의원의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한 작품. 그러나 감독은 이것을 영화화 하면서 실존인물 김근태와 이근안의 실명을 사용하는 대신, 비슷하지만 다른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단지 김근태와 이근안 ‘만의’ 일이 아닌, 그 시절에 일어났던 수많은 이들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사장'과 만나는 김종태.
실제 역사에서 이들은 회사로 위장해서 일을 했고, 각각의 직책은 회사의 직책으로 불렸습니다.
이렇게 연락으로 지시도 받았습니다.
VIP 대접 받아 끌려가는 상황.
끌려온 거 자체가 일반상황을 능가하긴 하지만 말이죠.

영화의 연출은 약간 낡아 보입니다. 아니, 조금 구식이라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죠. 어떻게 보면 [부러진 화살]에서 지적된 단점의 연장선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광기의 시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오히려 그 구식의 연출은 더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 연출이 맞닿으면서 관객에게 그 광기의 시대를 느끼게 해주거든요. 그것은 현재에도 그 광기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꽤 인상 깊죠.
영화의 일은 시대의 일이고, 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났다면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고문 하기 전에 건강 검진하는 '장의사' 이두한
영화의 진정한 잔혹한 장면의 시작입니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고문장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고문은 [쏘우]시리즈 등의 이른바 ‘고문 포르노’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 영화의 고문은 시대를 보여주기 위한 고문입니다. 고문 포르노들은 어차피 그것이 극이기에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극중에서 나오는 인물을 죽이기 위한 장치니까 쓸데없이 잔인해질 수 있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는 고문은 그들이 원하는 말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기에 보이는 외형은 덜 잔인해 보여도, 즐길 수 없는 진정한 고문을 체감하게 합니다. 그것이 감독의 의도이고요. 그리고 이 고문은 이 영화의 마지막에 준비된 고백을 위한 하나의 준비이기도 합니다.
초반부 고문. 차라리 이때가 나았죠...
과학적 고문의 향연. 안 죽이는 고문의 극단입니다.
안 죽이기 위해 이렇게 휴식도 취하지만 저 순간이 더 무섭습니다.

배우들은 엄청납니다. 다들 열연을 펼치고 있어요. 당하는 역할인 박원상씨나 고문을 하는 역할인 다른 배우들이나 누가 더 잘 했는지 우열을 가리기 힘듭니다. 하지만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분이 있죠. 이경영씨 입니다. 농담이 아니고 OCN드라마 [뱀파이어 검사 2]가 지난주에 종영된 게 다행일 정도로 정말로 무서운 프로페셔널 ‘장의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뱀파이어 검사 2]의 이경영씨.
정말로 영화 보고 있으면 저 드라마가 지난주에 종영된 게 다행으로 보입니다.
너무나도 강렬하셨죠.
영화 상영 이후 GV가 있었는데 이분이 입을 열자 반응이 참 죽여주더군요.
.

오카모토 미노루와 불멸의 29만원이 일으킨 이 광기의 시대는 아직 제대로 끝나지도 않았고, 심지어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것을 위한 재연이고, 그것을 위한 고백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바로 지금 필요한 영화가 됩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이념이나 정치 스탠스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뭐라 왈가왈부하고 싶다면 일단 가서 보세요. 보시고 나서 얘기합시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1. 실제보다 영화상의 고문의 강도는 낮은 편입니다. 실제 이근안이 한 고문의 종류를 보면 아주 상상을 초윌 해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대표 고문이 요도에 볼펜심 꽂기였다고 하니...

2. 마지막 부분의 고백에서 ‘어떤 분’이 나오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엄하게 당하신 분이 그 당한 가치를 부활시키는 곳에 계시면 어쩌자고요...

3. 감독님이 바란 등급은 12세 관람가였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15세 관람가는 받아낼 수 있긴 한데 12세는 조금 힘들었다고 봅니다.

4. [부러진 화살]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배우들은 무보수로 참여했습니다. 영화가 성공해야 이들에게 돈이 돌아가는 식으로 계약했다고 하더군요.

※ 어이, 이근안, 그리고 70~80년대 잘 나가셨다는 고문 전문가들. 마누라년하고 자식새끼들 데리고서 이 영화 꼭 봐라. 두 번 봐라. 너희를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니까. 

by 기현 | 2012/11/21 05:14 | 이런영화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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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llenait at 2012/11/21 10:46
영화는 좀 약해야(?) 관객들이 끝까지 보겠죠...
Commented by 기현 at 2012/11/21 13:18
약한데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죠.
Commented by 김갱 at 2012/11/21 16:14
어제 gv에서 질문하셨던 분이시군요 ㅎ 글 잘 보았습니다 ㅎ
Commented by 기현 at 2012/11/21 18:05
제가 질문한 거 맞습니다. 님의 글도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시비걸러 아무도 안 오는 걸까요...
Commented by 김갱 at 2012/11/21 18:15
제 글에 빌미가 되는 문장이 많았을까? 라고 생각 중입니다.... ^^;
Commented by 기현 at 2012/11/21 18:29
이글루스가 우글루스 수준에 메인 가셔서 어택 가한 거 같은데 저도 어택 잔뜩 별렀더니 아무도 안 오네요...
Commented by 김갱 at 2012/11/21 18:31
제가 쉬운 남자로 보이나봐요 ㅠ
Commented by 기현 at 2012/11/21 19:05
토닥토닥...ㅠㅠ
Commented at 2012/11/23 14: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2/11/2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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