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명문고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던 고3 유진 테일러가 학교 뒷산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같은 학년의 김준은 경찰서에서 48시간동안의 조사를 받은 후 혐의 없음으로 풀려납니다. 풀려난 다음 날, 준은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무언가 준비를 해서 학교로 가게 됩니다. 어딘가 어둡고 학교 건물이라 보기 힘들지만 학교 안에 있는 곳, 그곳에는 이번에 수시1차를 통해 합격한 아이들이 자신들을 축하하고 있었고, 준은 그 아이들을 감금합니다.
[레인보우]를 통해 팍팍하고 힘든 삶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 했던 신수원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은 그녀의 전 직업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고등학교 얘기입니다. 외형만 보면 우리가 항상 봐왔던 극적으로 포장된 아름다운 청춘 얘기가 나올 것 같아 보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레인보우]에서 있었던 일말의 희망조차 거세된 세상, 그것이 [명왕성]이 보여주는 세상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했던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실 하나를 골라서 무기를 던져놓고, 다 죽이고 살아남은 한 명에게 서울대에 무조건 입학하게 해 주겠다 하면 분명히 살벌한 풍경이 벌어질 것이라고요. [명왕성]은 그런 분위기를 정확히 잡아냅니다. 여기 나오는 학교의 모습은 진짜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를 들어가든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모습을 바탕으로 깔고 갑니다.
그 바탕에 깔린 이야기는 약간은 과장되어있고, 약간은 힘에 부친 듯 보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감독은 꽤 치밀하게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따른 원인과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사회의 잘못된 구도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많은 얘기를 함으로서 꼬일 위험이 있습니다만, 감독은 자신이 잘 아는 공간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서 그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런 감독의 연출 아래 [시]에서 나름 잘 했던 이다윗은 어린 나이에 너무나 많은 것을 짊어지게 된 김준이라는 캐릭터를 무서울 정도로 잘 표현합니다. 이 영화에서 절반의 칭찬을 감독이 들어야 한다면, 나머지 절반을 들어야 할 건 이다윗입니다. 그가 연기하는 김준은 이야기나 캐릭터 상에 존재하는 나름의 비약이나 구멍을 스스로의 연기로 채워 넣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물이 후반부에 가슴 아픈 대사를 할 때, 그것은 연출의 힘도 있지만, 배우가 채워 넣는 그 힘이 더 강합니다. 그리하여 그 대사는 꽤나 설득력이 있어집니다.
성준은 영화의 미스터리의 시작이면서 어떻게 보면 키를 쥐고 있는 유진 테일러를 괜찮게 만들어냅니다. 김꽃비는 이제는 좀 나이가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쌓아놓은 경력과 연기로 좋은 호연을 해내고, 특별출연한 조성하씨나 전작에서도 나왔던 박현영씨 등의 중견 연기자들은 이 이야기에서 필요한 것들을 해주고 있습니다. 10대를 연기한 몇몇은 솔직히 아직은 미흡한 면이 있긴 했습니다만... 특히 성준을 제외한 나머지 비밀집단의 멤버들은 좀 거슬린다 싶은 지점이 보이긴 했습니다. 나름대로 잘 해냈지만요.
약점도 있고, 단점도 존재합니다.(어쩌면 그것은 아직 이 영화가 덜 다듬어진 영화라고 GV에서 말한 감독의 말과 연관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힘이 그 약점과 단점을 덮어버리는 영홥니다. 4억이라는 풍족하지 않은 예산과 상당수의 신인배우들을 데리고 진행한 영화지만, 그것이 오히려 영화에서 현실적인 느낌을 살리는데 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 영화 잘 봤습니다.

1. 학생들 중 가장 어린 배우는 이다윗인데, 연기경력은 다른 배우들보다 더 많고, 게다가 주연입니다. 심지어 이다윗은 현재 고1입니다. [써니]의 재림인가요?

2. 아직까지 배급사를 못 잡았답니다. 제작도 제작사 대표가 단독으로 4억을 투자해서 만든 것이고요. 꽤 괜찮은 영화니까는 누구라도 좀 잡아갔으면 좋겠습니다.

3. 감상 당시에 고등학교에서 단체관람을 와서 실제 고등학생들이 봤고, 몇몇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영화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by 기현 | 2012/10/24 04:36 | 이런영화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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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y Fair Lady at 2012/10/24 08:51
영화 소개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좋은 영화 많이 알게 되어서 즐겁네요!
Commented by 기현 at 2012/10/24 17:53
바쁘실텐데 댓글 남겨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Commented by 규베 at 2012/10/24 16:27
흥미로운 영화들 소개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Commented by 기현 at 2012/10/24 17:54
개봉하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건 진짜 소개일 뿐이니까요.
Commented by 엠보싱 at 2012/10/25 01:06
이거 보고싶었는데 매진돼서 다른영화 봤어여 ㅠㅠ 일반극장에서도 볼수있기를 기대합니다 ㅠ
Commented by 기현 at 2012/10/25 01:12
개봉해야죠. 이 사회에 필요한 얘기를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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