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보그 그녀

2177년, 한 소녀는 자신과 닮은 2070년에 만들어진 사이보그를 구입합니다. 그 사이보그의 메모리카드를 본 그녀는 그 사이보그가 만났던 남자를 만나러 2007년으로 가서는 하루 동안의 데이트를 합니다. 그리고 1년 뒤인 2008년,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는 그 남자는 그녀 대신에 그녀와 닮은 사이보그를 만나게 됩니다.
여 - 와아, 신난다. 그런데 논리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남 - 몰라, 감독님이 알아서 하겠지.

[엽기적인 그녀]로 재기에 성공한 곽재용.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또한 오만함을 안겨주었고, 그 오만함과 오판으로 만들어진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엄청난 욕설과 함께 그 후 그의 차기작들에게도 영향을 줄 정도의 흥행성적을 보여줬습니다. 덕택에 그는 3부작으로 생각했던 작품의 3부를 만들지 못한 체 [무림여대생]의 촬영에 들어갔지만, 작업이 끝나고 나서도 개봉을 못하는 일이 일어나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일본 측의 제의를 받고 그 마지막 3부에 해당하는 시나리오를 들고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솔직히, 저 이작품 많이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 [가을여행]에서부터 시작되는 나머지 필모그래피는 저에게는 그닥입니다.

솔직히 [엽기적인 그녀]이후 곽재용은 이른바 ‘엽녀’의 자기 복제를 계속해왔습니다. 데뷔작 [비오는 날의 수채화]의 큰 성공 이후 흥행작 하나 못 만들었고, 8년 동안은 말 그대로 손 놓고 노는 꼴이었던 그를 한방에 흥행감독으로 만든 영화니까 그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복제를 그가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해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참의 퇴화를 하면서 그 걸음을 걸었다는데 있다는 겁니다.
그 퇴화의 결정적인 방향을 보여준 영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이번의 경우, 한국이 아닌 일본 쪽의 제작팀이 붙었고, 그러면서 일본의 현지 실정에 맞게 세세한 사항들이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곽재용이 길게 쓴 장면이나 길게 찍으려는 장면들을 제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작품 전체의 시간은 짧아졌습니다. 그러나 곽재용은 곽재용이고, 그의 작품은 그의 작품입니다.
SF라고 주장할 수 있는 뭐든 먹는 그녀.
그런데 보다보면 이건 엽녀의 사이보그버전이라 느껴질 뿐입니다.
후반부의 대지진은 클라이맥스를 담당하지만, 그냥 끌어당겨다 썼을 뿐이라는 느낌.

그것은 이것 역시 일본식으로 만든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고 그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만든 두 편의 영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와 [무림여대생]이 오히려 장점보다 단점들이 증폭되어 나타났다는 점은 이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를 알게 합니다. 일단 영화 전체의 이야기 전개와 분위기가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와 비슷하게 나가버리고, 짧아진 상영시간에서 필요 없는 부분이 많이 살아난 덕택에 영화가 클라이맥스까지 가는 감정이 보이질 않으며, SF라는 설정으로 보강하려한 이야기 자체의 허점들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강화되는 일이 일어나버렸습니다
도대체 이게 가족없이 알바로 혼자사는 놈이 사는 집이라 할 수 있겠냐?
아니 백보양보해서 다 있을 수 있다고 해도 영화에서 뒷받침이 안 되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죠.

이 영화의 진정한 희생자들이라면 배우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마 코이데 케이스데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노다메 칸타빌레]의 과장연기로 알려진 덕택에 그의 담백한 연기를 맛볼 수 있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문제는 차태현하고 겹친다는 거), 아야세 하루카의 경우는 이건 뭐 사이보그판 전지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할 말이 없고, 주변에 있는 배우들 역시 그냥 이건 소모품 그 이상으로 쓰질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오던 분이(뒤에 펑키머리)
이렇게 나오니 신선은 한데 문제는 차태현하고 많이 겹친다는 거.
아야세 하루카. 연기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건 그냥 싸이보그버전 전지현이었다는게...

이분에게 필요한 건 변화입니다. 곽재용 감독은 한번 각오하고 변화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지금은 잘 나갈지 몰라도 최종적으로 남는 건 나락입니다.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1. 이 영화에서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스승의 역할로 나오던(그러나 코이데의 스승은 아니던) 다케나가 나오토가 주인공이 듣는 수업의 교수로 나옵니다만, 감독은 그를 그저 소모품으로만 쓰고 있습니다. 이건 좀 너무하잖아.
이분 여기서도 개그만 펼치신거 아니거든요.
다른 작품에서도 개그만 하시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잘 하시거든요.

2. 일본에서는 이미 상당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거 때문에 그는 이 스타일을 또 다시 한동안 고수하겠죠.

3. 보다보면 중반즈음 지나서 예민의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가나옵니다. 물론 일본어 번안인데, 노래를 쓸데없이 장엄하게 만들으셨더군요. 어익후...

by 천용희 | 2008/08/02 05:49 | 막장영화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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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8/02 11:09
멜로팬에게도 sf팬에게도 둘다 욕먹을 공산이 크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OTL

......근데 무려 '비오는날 수채화'와 같은 감독이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이런 충격이)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8/08/02 11:17
일단 SF쪽에서는 그냥 뭐 보면서 괴로우실 거 같고요, 멜로는 뭐 그냥 [엽기적인 그녀]의 싸이보그버전정도라 보시면 됩니다.

꽤나 많은 분들이 [엽기적인 그녀]부터 생각을 해서요. 저 시절에 영화 3편 찍고 오래 쉬신 것도 있긴 하죠.
Commented by 페니웨이™ at 2008/08/02 14:56
리뷰 잘 봤습니다. 확실히 곽감독이 엽기녀 이후 스타일을 벗어나질 못하는군요. 좀 안타깝습니다.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8/08/02 22:48
솔직히 제가 보기에는 벗어나질 못한다기 보다는 벗어날 생각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Commented by oIHLo at 2008/08/03 22:56
1. 저 분은 오시이 마모루의 개똥철학까지 소화 가능하신 천상 배우 아니십니까 ㅎㅎ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8/08/04 02:48
문제는 저분을 그냥 소모한 곽재용이 저분이 작업한 감독 중에서 제일 나쁘다는 거...완전한 사육5도 영화는 쓰래기여도 저분은 명배우였건만...
Commented by 아메바정 at 2008/08/04 10:31
헉;ㅁ; 노다메의 마츠미랑 같은 배우였나요; 사실 참 잘 생긴 배우였네요;;;
엽기적인 그녀는 그냥 생각없이 재밌게 봤지만 ㅠㅠ 무림 여대생도 평이 아주 안 좋던데...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8/08/04 14:42
뭐 멀쩡한 역할도 많이 했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노다메가 춈 강하게 어필해서 저쪽으로 설명하는게 낫지만요.
Commented by 우노히카 at 2008/08/04 12:02
머 다들 엽기녀랑 똑같다고들 하던데...
그나저나 모든 일이 잘 풀리셔야 할텐데요 ^^ 그래도 기운을 내셔서 화이팅!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8/08/04 14:40
짧다는 강점은 있는데 그 강점이 엽녀에서 그나마 말 되게 했던 부분을 자르는 꼴이 되다보니 말이 더 안 되게 됐다고 해야 할려나요...
Commented by 패닝홀릭 at 2008/08/08 11:59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길래,뭔가 변화가 있는가 했었는데 아니었군요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8/08/08 13:28
일본에서 엽녀스타일을 꽤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겠죠.
Commented by qwer999 at 2008/08/08 15:33
외국에서는 곽재용 스타일이 아직 잘 먹힌다는군요.
여친소도 흥행이 꽤 괜찮아다고.. orz
계속 이길로 갈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천용희 at 2008/08/08 15:52
그냥 뭐 울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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